링 위에서 3분, 첫 스파링을 직접 해봤다

헤드기어 쓰고 처음 링에 올라간 날

복싱 체육관에 등록하고 석 달째 되던 날, 관장님이 "오늘은 스파링 한번 해보자"고 했다. 나는 '아직 잽도 제대로 못 치는데요'라는 말을 삼키고 마우스피스를 물었다. 격투기 중계를 그렇게 오래 본 사람이 링 위에서 3분을 못 버틴다는 걸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건지, 그냥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인 건지 지금도 헷갈린다. 아무튼 해봤다. 그 3분짜리 기록을 남긴다.

등록 첫날 관장님이 "스파링은 다들 처음엔 웃으면서 들어가서 울면서 나온다"고 했는데, 그걸 농담으로 들은 내가 제일 큰 문제였다. 경고는 미리 받았고, 나는 그걸 무시했다. 그래서 이 글은 후회가 아니라 자료다.

링에 오르기 전, 이미 지고 있었다

스파링 전에 챙긴 건 헤드기어, 마우스피스, 14온스 글러브, 핸드랩이다. 체육관에서 빌릴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마우스피스만큼은 내 것을 샀다. 입에 넣고 끓는 물에 담갔다가 물어서 모양을 잡는 방식인데, 이 과정에서 이미 손을 한 번 데었다. 시작도 전에 작은 부상 하나를 챙긴 셈이다.

여기서 제일 큰 착각 하나. 중계로 볼 때는 선수들이 링 안에서 여유롭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. 직접 올라가 보니 그건 여유가 아니라 기술이었다. 나는 가드를 올리는 것만으로 어깨가 타들어 갔고, 1라운드 시작 30초 만에 팔이 납덩이가 됐다. '아, 저 사람들은 저걸 12라운드 하는구나.' 존경심이 생기는 순간 주먹이 날아왔다.

3분 동안 몸이 알려준 것들

참고로 체육관 스파링은 보통 라운드 사이에 1분쯤 쉬는 시간을 둔다. 그 1분이 얼마나 짧은지는 헉헉대며 구석 의자에 앉아본 사람만 안다. 물통을 집을 힘도 없어서 관장님이 입에 물을 대줬다. 자존심은 그 의자 밑에 두고 왔다.

상대는 체육관 동료였고, 관장님이 "가볍게, 가볍게"를 열 번쯤 외쳤다. 가볍다는 말의 정의가 나와 상대가 달랐던 것 같다. 내가 기억하는 장면은 세 가지다.

첫째, 눈이 감긴다. 머리로는 '상대 주먹을 끝까지 보자'고 다짐했는데, 주먹이 얼굴로 오면 눈꺼풀이 알아서 닫힌다. 이건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 연습으로 고쳐야 하는 반사라고 한다. 둘째, 호흡이 사라진다. 첫 1분이 지나면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. 셋째, 내 주먹은 생각보다 느리다. 샌드백은 맞아도 돌려주지 않는데 사람은 돌려준다. 이 당연한 사실을 몸으로 배우는 데 3분이면 충분했다.

'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.' 2라운드 중반에 든 독백이다. 그런데 이상하게 다음 날 아침에 든 생각은 '한 번만 더 해볼까'였다. 지금 보면 이게 제일 무서운 대목이다.

라운드 3분, 휴식 1분

중계 화면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

그 뒤로 경기를 보는 눈이 조금 바뀌었다. 예전에는 KO 장면만 기다렸는데, 이제는 선수가 가드를 내리지 않고 버티는 중반 라운드가 더 눈에 들어온다. 체급이나 기록 같은 수치보다 저 사람이 저 자세를 유지하는 체력이 대단해 보인다. 복싱 아마추어 경기 규정은 월드복싱 공식 사이트에서 대회 소식과 함께 볼 수 있고, 프로 격투 경기 일정은 UFC 공식 홈페이지에 정리돼 있다. 나처럼 몸으로 한 번 겪고 나서 보면 같은 경기도 다르게 읽힌다.

경기를 다시 보고 싶을 때는 UFC Fight Pass 시청 방법 같은 안내를 먼저 찾아본다. 본방을 놓쳐도 다시 볼 곳이 있다는 건 스파링 후 근육통으로 누워 있는 사람에게 꽤 큰 위로다.

스파링이 끝난 저녁에는 계단을 내려가는 게 제일 힘들었다. 복근도 어깨도 아닌 종아리와 목이 먼저 아팠는데, 링 위에서 나도 모르게 온몸에 힘을 주고 있었다는 증거다. 힘을 빼는 것이 기술이라는 말을 그날 처음 이해했다. 그 말을 듣고 웃던 시절의 내가 조금 부끄럽다.

같이 다니는 동료는 첫 스파링 후 사흘을 절뚝거렸고, 나는 이틀 동안 세수하다 어깨 때문에 울 뻔했다. 둘이 웃으면서 '이게 취미 맞냐'고 주고받았다. 맞다. 이상하게도 맞다.

다시 링에 오른다면 손볼 세 가지

다시 한다면 바꿀 건 세 가지다. 스파링 전날 잠을 충분히 잘 것, 공복으로 가지 않을 것, 그리고 상대에게 미리 "나 처음이야"라고 말할 것. 자존심 때문에 마지막 걸 생략했다가 제일 크게 후회했다. 세 번째 이유로 안 맞는 척은 아무 소용이 없었고, 차라리 솔직하게 말했으면 상대도 강도를 더 낮춰줬을 것이다.

장비도 미리 손봐야 한다. 글러브 안쪽 핸드랩이 풀리면 주먹을 쥘 때마다 손목이 꺾이는 느낌이 들고, 헤드기어는 턱끈이 헐거우면 시야를 가린다. 나는 둘 다 겪었다. 비싼 장비보다 내 손에 맞게 조이는 습관이 먼저라는 걸 얻어터지고 나서 알았다.

그리고 스파링 영상은 꼭 찍어두라고 권하고 싶다. 내 자세가 생각보다 훨씬 웃기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이만한 자료가 없다. 웃기다는 건 곧 고칠 곳이 많다는 뜻이고, 고칠 곳이 많다는 건 아직 늘 여지가 많다는 뜻이니까 꽤 긍정적이다. 그렇게 믿기로 했다.

링 위에 올라가는 일이 무서운 사람에게 딱 한마디만 건넨다. 3분은 생각보다 길지만, 끝나고 마시는 물 한 모금은 생각보다 훨씬 달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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